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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행복한 설]주민 “관리비 오르지만, 가족인데요?”…경비원도 “일할 맛 납니다”
등록일 2018-02-14
내 용

주민 “관리비 오르지만, 가족인데요?”…경비원도 “일할 맛 납니다” " 

 


-‘갑을’ 대신 ‘동행’ 계약서 도입한 동원에코빌 아파트
-비정규직 관리소장, “고용 불안 없어요…상생의 힘”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 동아에코빌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서성학(43) 관리소장은 이번 겨울이 유난히 따뜻하다.

지난해 경비원 위탁업체와 경비원 간의 계약서에 ‘동행 조항’을 넣었기 때문이다. 계약서엔 ‘갑을’이라는 용어 대신 ‘동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아파트와 경비원이 함께 상생하자는 의미에서다.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 동아에코빌 아파트의 서성학 관리소장(왼쪽)이 안덕준 입주민대표회의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경비원들과 함께 있는 모습.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동행 계약서에 따르면

▷현재 근무하는 경비원 17명을 모두 고용할 것

▷경비원의 급여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지급한 급여와 동일하게 지급할 것

▷급여를 연체하지 말 것

▷경비원 인력을 입주자대표회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교체하지 말 것

▷경비원이 쉬는 시간 이용할 수 있는 휴게장소를 제공할 것 등의 조건이 포함됐다. 

해당 계약 조건은 12명의 환경미화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행계약서 덕분에 최저임금 7000원 시대 속에서 비정규직 경비업계의 고질병인 ‘고용 불안’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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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상월곡동 동아에코빌 아파트의 서성학 관리소장(왼쪽)이 안덕준 입주민대표회의 회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서 소장은 동행계약서를 쓴 이후부터 아파트 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감지했다. 

서 소장은 “과거엔 ‘경비원 월급은 입주민이 주는 것’이라는 태도로 경비원을 하대하는 입주민들이 더러 있었는데 요즘은 가족처럼 생각해주고,

고용 불안에서 벗어난 경비원들 또한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한다”고 말했다. 

15년 째 근무 중인 경비원 김서현 씨는 “나이 먹어도 오래 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용 불안이 사라져서 좋다”며

“이번 설에 맘 편히 손주들에게 세뱃돈을 쥐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일할 때 ‘고생한다’고 얘기해주는 따뜻한 주민들이 있어 일할 맛도 난다”고 덧붙였다.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 동아에코빌 아파트 경비원들과 주민들이 함께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모습.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동행 계약서는 지난 2015년 서 소장이 당시 입주민대표회의 회장이었던 장석춘 씨와 공동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당시 최저임금 인상으로 관리비 부담을 느낀 입주민들이 경비원들을 잇따라 해고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때였다.

서 소장과 장 씨는 이 때 갈등보다는 상생을 택했다. 장 씨가 입주자 대표회의를 열어 관리규약을 개정했고, 성북구청에서 공모를 통해 확정한 상생아파트 브랜드 ‘동행’의 의미를 살려 동행계약서를 채택하자고 함께 제안해 이를 성사시켰다. 

서 소장은 당시 첫 동행 계약서를 ‘1% 동행’이라고 부른다. 

 

서성학 동아에코빌 관리소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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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소장은 “1053세대를 대표하는 입주민 13명이 동행하자고 했으니 ‘1% 동행’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동행 취지를 알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주민들이 많아져 ‘60% 동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용역비도 관리비에서 인상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경비원인) 가족들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며 고마워했다. 

장 씨에 이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맡고 있는 안덕준 씨는 그 누구보다 경비원과 주민간의 거리를 좁히는데 공을 들였다.

경비원들의 근무시간을 조절하고 야간 순찰 시간을 줄이는 등 모두 안 씨가 경비원들의 고충을 귀담아 들으면서 가능한 것이었다. 

 

 

 

서성학 동아에코빌 관리소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안 씨는 “예전에 비해 아파트 내에서 확실히 가족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느껴진다”며

“그들이 최대한 오래 근무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도와주고 고충을 들어주는 것은 입주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동아에코빌로 온 서 소장은 본래 계약직 관리소장이 아닌 용역업체 본사의 정규직 직원이었다.

약 8년 간 본사에서 위탁 운영 관련 업무를 하던 그는 어느 날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서 소장은 “본사직이 분명 안정된 직장이긴 했지만 그보다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했다”며 “본사 입장과 관리소장의 입장이 많이 다른데,

소장으로서 근무하면 양쪽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혹독했다. 본사에서 나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관리소에서 일하게 된 그는 곧바로 고용 불안의 현실에 부딪쳤다.

관리소에서 일한 지 1년 반 만에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서 소장은 “당시 주상복합 아파트 분위기는 여기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며 “언제 위탁업체가 바뀔 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잠을 못 이뤘다”고 회상했다. 

그는 특히 당시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이버지는 본사를 나와 현장에 가는 것을 가장 심하게 반대했다.

약 20여 년간 아파트에서 시설물 관리사와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고용 불안에 떠는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서 소장은 “관리소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아버지의 잔소리가 심해지셨다”며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께 연락을 드리면 아버지의 첫 마디가 ‘회사 별일 없냐’는 질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동행 계약서 덕분에 고용 불안이 사라졌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나는 여전히 불안한 비정규직 아들에 불과하다”며 죄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동원에코빌에서 입주민과 경비원과의 상생과 함께 무엇보다 경비원들의 건강을 챙긴다. 경비원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침마다 경비원들에게 자신이 건강해야 타인도 지켜줄 수 있다고, 몸이 허락할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시다가 고령이라는 이유로 해고 통지를 받은 어머니의 영향이기도 하다.  


서 소장은 “아버지와 같은 아파트에서 어머니께서 용역업체가 바뀌는 동시에 일자리를 잃으신 적이 있다”며

“당시 약 50만원의 월급을 받고자 열심히 일하시던 어머니께서 나이 때문에 해고 당하셨을 때 서운해하시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이어 “경비원들도 누군가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할아버지이고, 내겐 가족같은 사람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 소장도 관리소장이기 전에 다른 아파트의 입주민이다. 아파트 관리업계에서 일하는 만큼 그가 자녀에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예절이다.

이는 경비원 아들로서, 관리소장으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꼭 교육시키는 것이 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 분들에게 인사시키는 것”이라며

“누군가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시각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며 “맘 따뜻한 아파트, 예의가 바른 아파트가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기사 원문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80214000031#a